2019. 12. 26. 00:02ㆍ칼럼필사
부산일보사
[밀물썰물] 성탄, 세밑 / 김건수 논설위원

색색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조명,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건네는 인사, 북적이는 선물 가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흥겨운 파티. 크리스마스라면 으레 떠오르곤 했던 머릿속 풍경이 이제는 현실에서 사라지고 있다. 설렘도 들썩임도 없다. 몸을 움직여 특정 장소에 가서 하던 행위들이 점점 모습을 감춘 탓이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시절이 변했다. 선물도 모바일로, 여행 티켓도 인터넷으로 구입한다. 거리마다 가게마다 울리던 캐럴도 듣기 힘들다. ‘모바일’과 ‘온라인’의 시대, 사회가 ‘개인’의 품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전의 들뜬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나온 뒤로 자리잡은 풍경이다. 자린고비 스크루지 영감이 유령의 손에 이끌려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고는 개과천선한다는 내용은 익히 알려져 있다. 시대적 배경은 빈부 격차가 가난한 사람들을 처참한 빈곤에 밀어 넣었던 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기다. 어린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탄광이나 굴뚝에 들어가 일해야 했던 때인데, 영국 런던에서 열린 장례식 중 절반은 채 열 살이 안 된 아이들의 것이었다.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고 모두가 즐거운 휴일이 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당시엔 상상하기 힘들었다. 디킨스는 그 옛날 전통적인 축제를 부활시켜 크리스마스 정신을 다시금 일깨우려고 책을 쓴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유령의 옷자락에 흉측한 모습으로 매달린 아이들의 이름이다. 한 아이는 ‘무지’, 다른 아이는 ‘궁핍’, 유령은 “무지라는 아이의 이마에 적힌 글자는 ‘파멸’”이라고 말하는데, 곱씹어보면 의미심장하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면 파멸을 맞는다는 것이니까. 그리고 “궁핍이라는 아이가 유령의 자식이 아니라 인간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가난의 사회적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결국 가난한 아이들이 교육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책임이라는 게 작가의 메시지다.
새해를 바라보는 세밑에 성탄절이 있다는 건 그래서 남다른 의미를 드리운다. 숙명적 유한성을 딛고 무한으로 가려는 인간의 안간힘이 몰리는 때가 연말이다. 또한 삶의 영원성을 향한 가장 절실한 사회적 행위가 교육일 터이다. 한 세대가 축적된 지적 경험과 지혜, 물적 토대 같은 유무형의 자산을 다음 세대에 전수해 주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 시간. 이게 성탄절의 또 다른 의미는 아닐지….
*인상 깊은 구절
- 어린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탄광이나 굴뚝에 들어가 일해야 했던 때인데, 영국 런던에서 열린 장례식 중 절반은 채 열 살이 안 된 아이들의 것이었다.
☞ 처참한 빈곤의 시대였던 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기에는 즐거운 크리스마스의 이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 혹은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어린아이들은 힘들게 일을 하고 있었다니... 크리스마스에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요약
이전의 들뜬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나온 뒤로 자리 잡은 풍경이다. 디킨스는 그 옛날 전통적인 축제를 부활시켜 크리스마스 정신을 다시금 일깨우려고 책을 썼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가장 인상 적인 것은 유령의 옷자락에 흉측한 모습으로 매달린 아이들의 이름이다. 가난한 아이들이 교육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은 모든 인ㄹ의 책임이라는 게 작가의 메시지다.
새해를 바라보는 세밑에 성탄절이 있다는 건 그래서 남다른 의미를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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