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24. 00:24ㆍ칼럼필사
매일경제
[책과 미래] 극일의 출발점 /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선생님은 외국어를 몇 가지 할 수 있습니까?”
‘공부의 철학’(책세상)을 써서 일본 지성계에 돌풍을 일으킨 철학자 지바 마사야가 모교인 도쿄대에서 강연 직후 받은 질문이다.
“석사 학위를 딸 때까지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를 했고요. 거기에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를 좀 할 줄 알았습니다. 문과 연구자를 목표로 한다면 영어, 제2외국어는 물론 제3외국어도 필요합니다. 사상을 전공하려면 근대어 서너 개에 고전어를 더하는 식으로요. 저의 도쿄대 시절에는 그 정도 하는 게 당연하다는 압박이 있었습니다.”
지바는 1978년생, 올해 마흔한 살이다.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옛날부터 도쿄대는 이렇게 공부했다. 1940년생인 일흔아홉살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청어람미디어)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지적 욕구에 불타던 터라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두 번 나가는 세미나 수업을 많이 신청했습니다. 그리스어로 플라톤을 읽고, 라틴어로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고, 프랑스어로 베르그송을 읽고, 독일어로 비트겐슈타인을 읽었습니다. 학과 외 수업으로 히브리어로 진행되는 구약성서 강독을 했습니다. 소수만 듣는 수업이어서 결석은 불가능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만 했던 셈입니다.”
서울대와 비교하면 어떨까.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 교수들 하소연을 들으면, 강독 수업은 흔히 학생 수 ‘부족’으로 폐강되기 일쑤라고 한다. 교수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소수라도 들으려는 학생들이 있는데도 학교 지침에 따라 수업 자체가 열리지 못하는 것이다. ‘소소한 돈’ 때문에 교수와 학생이 마음껏 배움을 주고받지 못하는 국립대학이라니, 정말 ‘이게 나라냐’고 묻고 싶다.
이번주 도쿄에 출장을 갔다 왔다. 한일 갈등이 심각하지만 정해진 업무를 미룰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일본 서점은 여전히 풍요로웠다. 열심히 ‘공부한’학자들이 ‘숙련된’ 편집자의 도움을 받아 인류의 지적 성과를 다양한 형태로 ‘번역’해 일반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어떤 분야든 일본에서 구하지 못할 책은 드물다. 전 세계 학문의 성과를 집약한 저서와 번역서는 물론 시민을 위한 분야별 개설서, 첨단 쟁점에 대한 안내서 등도 모두 나와 있다. 전문가가 시민을 닥치고 ‘입막’하는 게 아니라 그 눈높이를 끌어올려 전문가 의견을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힘쓰는 것이 강국의 조건이다.
일본의 진짜 저력은 공부에 있다. 경제는 그 결과일 뿐이다. 공부와 출판을 따라잡지 않는 한, 대통령이 선언한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 수 없다. 극일의 출발은 여기에서부터다.
*인상 깊은 구절
- 전문가가 시민을 닥치고 ‘입막’하는 게 아니라 그 눈높이를 끌어올려 전문가 의견을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힘쓰는 것이 강국의 조건이다.
☞ 일본이 우리나라와 적대관계이지만 배울 점은 배워서 힘을 가진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다독의 국가로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전 세계의 학문성과를 비롯하여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 일반시민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여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솔직히 좀 놀라웠다. 시민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정보를 공유하여 나라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자세가 우리나라를 앞서가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요즘 ‘공부만이 살길이다’라는 생각을 절실하게 하고 있다. 공부해서 손해 볼 건 없다. 무엇이던지 배우는 것이 나만의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요약
‘공부의 철학’을 써서 일본 지성계에서 돌풍을 일으킨 철학자 지바 마사야가 모교인 도쿄대에서 강연을 했다. 그는 석사 학위를 딸 때까지 영어, 프랑스어 등 6개국어 이상을 공부했으며, 제3외국어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서점은 학자들이 숙련된 편집자의 도움을 받아 인류의 지적 성과를 다양한 형태로 ‘번역’해 일반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전문가가 시민을 닥치고 ‘입막’하는 게 아니라 그 눈높이를 끌어올려 전문가 의견을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힘쓰는 것이 강국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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