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7. 00:06ㆍ칼럼필사
부산일보사
[밀물썰물] 뺑뺑이 / 이준영 논설위원

집단이나 개인 간 의사 결정에 있어 취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구성원 간에 합의가 있으면 별문제가 없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물론 가장 나쁜 사례는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다른 이의 의사에 개의치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행위이다. 하나, 이는 결국 다수의 저항에 부딪혀 견딜 수 없다는 걸 역사는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인류는 민주적으로 보이는 각종 제도를 만들어 냈다. 이 가운데 시선을 끄는 게 추첨인데, 의외로 역사가 깊어 흥미를 자아낸다. 제비뽑기라고도 불리는 이 방식은 운에 따라 결과가 좌우된다는 이유로 요즈음 잘 쓰이지 않는다. 심지어 요행수를 바라는 일종의 도박으로 여겨져 터부시될 정도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전당이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선 제비뽑기가 자주 이용됐다. 내정(內政)이나 외교 수장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인식으로는 폴리스의 형태가 이상한 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공정과 평등을 추구한다는 현대 선거 제도의 불합리성을 따져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지혜가 놀랍게 다가오기도 한다. 선거 제도가 결국 경제력과 지명도에 따른 기득권의 재생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아서, 선거 제도 개선 여론이 국회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제비뽑기가 나름의 내력을 지닌 채 연명하는 분야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바로 매년 벌어지는 평준화 적용 일반고의 학생 배정 현장이다. 이른바 ‘뺑뺑이’로 불리는 것으로 컴퓨터에 의한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진행된다. 어떠한 프리미엄도 용납지 않기에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불만이나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는 법.
예비 고교생과 학부모들은 밤을 새우며 손꼽아 낭보를 기다린다. 그런데 바라지 않던 학교가 배정되면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에 신도시와 도로건설, 재개발로 도시 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이러니 이전의 기준 적용이 안 맞을 개연성이 높다. 결국 ‘뺑뺑이(추첨)’를 잘못해 애먼 학생만 ‘뺑뺑이(여기저기 돌아다닌다는 뜻)’를 도는 황당한 일이 생기게 된다.
이에 부산시 교육청이 올해는 GPS(위치정보시스템)를 활용했다. 신기술로 남녀별, 지역별, 학교별 정원을 융통성 있게 조율해 만족도를 높였다. 그 결과 비지망 학교 배정률이 6.55%에 그쳤다. 정보통신기술의 순기능이 빛나는 순간이다.
*단어
1. 터부시하다: 외래어+한자어+우리말
개인의 신앙이나 사회적 관습 때문에 ‘꺼리게 된다, 꺼림칙하게 생각된다’
2. 낭보: 기쁜 기별이나 소식
*인상 깊은 구절
- 어떠한 프리미엄도 용납지 않기에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 이러니 저러니 싸우는 것보다 운에 따르는 제비뽑기가 속편한 것 같다. 어떠한 전제조건 없이 뽑을 수 있기에 그누구도 뭐라할 수 없는 그나마 공평한 방법이다. 간단한 예로 동료들과 ‘간식내기’를 할 때 가장 유용하게 쓰이지 않나 싶다.
*요약
인류는 민주적으로 보이는 각종 제도를 만들어 냈다. 이 중 제비뽑기라고도 불리는 이 방식은 운에 따라 결과가 좌우된다는 이유로 요즈음 잘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제비뽑기가 나름의 내력을 지닌 채 연명하는 분야가 평준화 적용 일반고의 학생 배정 현장이다. 이른바 ‘뺑뺑이’로 불리는 것으로 컴퓨터에 의한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진행된다. 최근데 신도시와 도로 건설, 재개발로 도시 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만큼 부산시 교육청이 올해는 GPS를 활용했다. 신기술로 남녀별, 지역별, 학교별 정원을 융통성 있게 조율해 만족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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