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필사80_공포의 크루즈선

2020. 3. 3. 00:02칼럼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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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사

[밀물썰물] 공포의 크루즈선 / 곽명섭 논설위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oid=082&aid=0000980576&sid1=110&opinionType=todayColumns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은퇴자들이 보통 꼭 한번은 꿈꿔 보는 여행이 크루즈 여행이다. 초대형 크루즈선에서 먹고 자다가 아름답다고 이름이 난 기항지에서 정박해 관광을 즐긴 뒤 또 다른 기항지로 떠나는 선상 여행은 가히 여행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수천명의 관광객이 보기만 해도 으리으리한 첨단 선박에서 각종 파티를 즐기며 세계 주요 도시를 유람하는 크루즈 여행은 그래서 작은 파라다이스 여행으로까지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완벽에 가까운 편의 시설과 환경이 오히려 승객들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기도 하니 아이러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창궐 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오도 가도 못 한 채 감옥 아닌 감옥같은 상황에 높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처지가 꼭 그렇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꿈꾸었던 최고의 여행이 폐쇄적이고 밀집된 크루즈선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오히려 최악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3일 일본 요코하마항에 입항한 뒤 510명의 감염자 발생으로 봉쇄된 이 크루즈선에서 지금까지 174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갈수록 확진자가 늘면서 승객 3600명의 하선 날짜도 언제가 될는지 기약할 수 없는 형편이다. 내릴 수도, 그렇다고 다른 기항지로도 갈 수 없는 막다른 처지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해결책도 없다. 그저 이번 사태가 잠잠해지길 기다려야 한다. 환상의 크루즈선이 공포의 크루즈선이 된 셈이다.

 

신종 코로나로 인해 크루즈 여행이 악몽으로 변한 또 다른 경우도 있다. 2200여 명을 태운 대형 크루즈선인 웨스테르담호도 기항지를 구하지 못 해 표류선 신세가 됐다. 이달 1일 홍콩에서 출발해 대만을 거쳐 7일께 일본 오키나와현 이시가키항에 입항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 사태로 역시 오도 가도 못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 필리핀, 괌 어디에서도 입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선사 측이 선내 감염자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신종 코로나에 놀란 각국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명의 정수를 보여 주는 장대한 크루즈선이 맨눈에 보이지도 않는 극미의 바이러스로 인해 한순간에 기피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문명의 근원적인 취약함과 인간의 겸허함에 관한 성찰이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해지는 때가 요즘이다. 아울러 이번 사태가 하루빨리 해결돼 감옥 같은 공포의 크루즈선에도 곧 해방의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단어

1. 기항지: 배가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잠시 들르는 항구.

2. 창궐: 못된 세력이나 전염병 따위가 세차게 일어나 걷잡을 수 없이 퍼짐.

3. 극미: (더할 수 없이 작거나 적다)의 어근.

 

*인상 깊은 구절

- 문명의 근원적인 취약함과 인간의 겸허함에 관한 성찰이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해지는 때가 요즘이다.

큰 맘 먹고 떠난 크루즈 여행에서 이게 웬 봉변일까 싶을 것이다. 오매불망 기대했던 여행이었을 텐데 이런 바이러스가 악영향을 끼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다. 정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현 상황에서라도 더는 전염이 퍼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요약

작은 파라다이스 여행으로 불리는 크루즈 여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한 채 감옥 아닌 감옥같은 상황에 놓였다. 폐쇄적이고 밀집된 크루즈선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오히려 최악의 결과로 나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 필리핀, 괌 어디에서도 입항을 거부했다. 문명의 정수를 보여 주는 장대한 크루즈선이 맨눈엔 보이지도 않는 극미의 바이러스로 인해 한순간에 기피 대상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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