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필사86_소리 없는 재난, 폭염

2020. 3. 19. 00:30칼럼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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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씨줄날줄] 소리 없는 재난, 폭염 / 이지운 논설위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oid=081&aid=0003019245&sid1=110&opinionType=todayColumns

 

이미지=서울신문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는 인류 최대의 발명품으로 에어컨을 꼽았다. 그의 자서전에서 이 대목을 접하고 잠시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폭염(暴炎)이 일상화된 요즘 그의 생각에 상당히 동조하게 된다.

 

2003년 여름 폭염으로 유럽 전역에서 2만명가량 사망했을 때 프랑스에서만 75세 이상 노인 1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노부모를 두고 바캉스를 떠난 뒤 벌어진 일이었다. 파리에 시체 안치소가 모자라 시신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프랑스 보건부 장관은 폭염이 프랑스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을 덮쳤다고 했고, 프랑스 응급의사회는 정부가 국가적 재난인 폭염에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8월의 학살이라고 주장했다.

 

폭염을 재난(災難)시하게 된 것 대략 미국 시카고의 1995년 여름이후부터다. 그해 714~20일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자 수가 부검으로만 485명으로 집계됐고, 뒤에 역학조사결과 평소 대비 초과 사망자 수가 739명 더 많은 것으로 정리됐다. 시카고시는 대규모 위원회를 꾸려 폭염에 대한 사회적 부검을 실시했다. 시민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역학적, 사회학적 측면을 파고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인들은 허리케인이나 지진, 토네이도, 홍수와 같은 극단적 재난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전부 합친 것보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훨씬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폭염을 재난으로 인식하지 못한 이유는 대부분의 희생자가 노인과 빈곤층, 소외계층인 탓이다.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가 그의 저서 폭염사회’(글항아리)에서 말 없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목숨을 소리 없이 앗아가는 재난으로 폭염을 규정한 근거다. 이런 일을 보고도 1만명 이상의 노인을 숨질 때까지 방치했으니, 프랑스 폭염 피해를 학살이라고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폭염이 사회적으로 재난시될 때, 주제는 필연적으로 기상 이변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단번에 건너뛰면 많은 것을 놓친다. 시카고시가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얻어냈던 것은 고립의 해소와 사회관계망 복원과 같은 사회적 대안이다. “혼자 사는 것이 사망률을 배가 시켰다거나 허약한 건강 상태에서”, “주민들과 고립된 사람들이 가장 위태로웠다고 한다. “나이 든 남성일수록 사회관계망의 핵심적 부분을 잃거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무연고 폭염 사망자의 80%는 남성이라니 경계해야 한다. TV가 분수대 앞에서 한가하게날씨 예보를 하는 것도 심각성을 무디게 한단다. 폭염은 재난뉴스로 다뤄야 한다는 얘기다.

 

연일 35도 안팎이다. 잘 있겠지 말고 부모와 친척, 친구, 이웃을 살필 때다.

 

 

 

*인상 깊은 구절

- 이 과정에서 미국인들은 허리케인이나 지진, 토네이도, 홍수와 같은 극단적 재난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전부 합친 것보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훨씬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폭염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재난들로 인한 피해사례들은 종종 접해서 알고 있지만, 폭염으로 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같이 밖에 나가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나는 날씨에는 에어컨과 같은 냉방기구의 부재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에 충분한 것 같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손에 쥐는 것은 에어컨 리모콘이다. 버튼 한 번 누르면 시원해지는 이 냉방기구의 발명은 요즘 감사하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다.

 

 

*요약

2003년 여름 폭염으로 유럽 전역에서 2만명가량 사망했을 때 프랑스에서만 75세 이상 노인 1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 보건부 장관은 폭염이 프랑스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을 덮쳤다고 했다.

폭염을 재난시하게 된 것은 대략 미국 시카고의 1995년 여름이후부터다. 그해 414~20일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부검으로만 485명으로 집계됐고, 뒤에 역학조사결과 평소 대비 초과 사망자 수가 739명 더 많은 것으로 정리됐다. 시카고시는 폭염에 대한 사회적 부검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인들은 허리케인이나 지진과 같은 극단적 재난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전부 합친 것보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훨씬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